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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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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1-05-03 17:00 조회3,1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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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자 가족회복수기

 
 
 

저는 두 자녀를 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입니다. 10여년의 결혼생활과 신랑의 중독생활은 다시 생각해봐도 끔찍한 악몽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이제 마흔, 신랑의 나이 또한 저와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 부모님 그늘 밑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릴 적에 친구였던 신랑을 만났습니다. 이제껏 아빠의 그늘 밑에서만 살다가 처음 아빠 같은 다른 남자를 만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거의 매일 데이트를 했고 데이트 장소는 언제나 술집이엇습니다. 액간의 술주정과 폭음이 있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즐거운 만남을 가지던 중 26살이 되던 해 신랑의 급한 결혼진행으로 전 다른 친구들 보다 빨리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1년 반 정도 후에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느데, 그때 까지만 해도 술에 대한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첫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신랑의 음주 문제는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음주의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밥을 차려놓지 않았다는 혹은 청소를 안했다는 등의 트집을 잡아 술 마실 구실을 찾았습니다. 무료하다며 술을 마시고, 신경질이 난다며 마시고, 심지어는 아이가 너무 운다고 마시기도 했었습니다.

 

보통의 남편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 더 가정적이고 육아나 가정에 더 신경을 쓰는 반면 신랑은 더 삐뚤어지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잔소리를 자주하게 되고 그 잔소리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이면 신랑은 집을 나가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파출소나 길거리에서 잔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도 전 가벼운 해프닝으로 여기며 신랑이 중독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남편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갔습니다. 일 없는 날이나 주말이면 방에 쳐박혀 술을 마시며 게임에 빠져있었고 남편의 역할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축업을 하는 신랑은 오전에 잠깐 현장을 둘러보고는 소주를 사서 집으로 들어와 마시고 술 취한 상태에서 운전해 다시 현장으로 갔다 오는 일을 반복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괴물이 되었다가 아침이 되면 멀쩡해지고 술 마시면 심해지는 언어폭력과 의처증 증세, 그리고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저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이어지는 부부싸움에 지쳐 서로 남들처럼 대하고 있을 때쯤에 남편의 금단 증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친정에서 목격한 남편의 행동은 심각성을 넘은 수준이었고 이때부터 병원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퇴원을 하려했고 퇴원 후 한 달간은 음주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음주를 하게 되었고 이로써 2년여 간의 입, 퇴원이 반복 되었습니다. 퇴원 후 이어지는 어김없는 의처증 증세는 또 다른 신랑으 술안주가 되었고 그럴 때마다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친정 식구들에게는 도저히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시댁 식구들은 병원에 입원해도 안 된다며 모든 잘못을 저에게 떠넘기는 듯 했습니다. 너무나 답답한 나머지 주위 아무 사람이나 붙들고 자문을 구했지만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을까?’하는 셍각에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는지 모릅니다.

 

종교의 힘도 빌려보고, 무당의 힘도 빌려봤지만 남편의 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갔고 이제 저도 포기가 될 쯤에 우연히 병원에서 열린 12일간으 프로그램에 (회복을 위한 캠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치료모임에 참여하면서도 술 때문에 입, 퇴원을 몇 차레하게 되고, 치료모임에 참석하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자주 트집을 잡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한 신랑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제 차를 부수고 엄청 심한 폭력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보니 지금껏 참고 살아왔던 응어리들이 터져 더 이상은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젠 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동안 친정 부모님에게도 비밀로 했던 신랑의 병을 알리게ㅣ 되고, 시댁 어른들에게도 이혼을 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신랑에게 면회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저의 얼굴과 온몸에 멍든 모습을 보고 자신의 행동에 충격을 받아서였는지 그 날이 술을 끊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주를 하면서 오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 술을 끊었다고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의 갈등이 어떻게 보면 최대으 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술을 먹고 싶은 충동이 올 때나 스트레스 상황이 오면 가족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술만 안 먹었다 뿐이지 성격이나 생활습관이 술 먹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떨 때는 술 먹었을 때 보다 더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습니다. 언제 또 술을 입에 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신에게 의지도 많이 했지만,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버 씩 가는 외래치료 모임과 원장님과 사회복지팀장님으 상담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다툼이나 문제가 생기면 둘이서 어떻게 하려고 하다보면 또 싸움이 되고 그러다 보니 수요일에 가서 상담과 교육으로 해결하고 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서로의 문제가 뭔지 어떻게 변해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바뀌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우면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바꿔 나가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 신랑이 술을 끊을 무렵 물고기를 키우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런 취미생활도 중독적으로 빠졌고 그런 것 땜에 가족4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많았지만, 그런 얘기를 해도 전혀 들으려고 생가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것도 교육에 참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도중 또 다른 중독자 가족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우린 서로를 이해 해주는 사람들 끼리 모임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독자의 성향들을 함께 공유하고 의논하며 앞으로의 신랑 단주 생활에 가장 가까운 이로써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얼마 전 이사를 하였습니다. 신랑은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하고 그 많던 물고기와 어항을 정리 했습니다. 다른 중독을 찾지 않고 뭔가를 깔끔히 정리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중독적으로 하던 취미생활을 정리 하면서 조금의 금단을 느끼는 듯도 하지만 잘 참아주고 있고 이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을 바라보며 알아서 이겨내는 힘이 생긴 것 같습니다.

 

10여년정도 신랑의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과 원망스러움과 슬픔으로 보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꼭 불행이 아니었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원래 고행의 연속이라는데, 인생은 원래 고행의 연속이라는데, 너무 쉽게만 살려고 했던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신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련을 겪으면서 저 자신의 인생에도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었고 좀 더 비우고 내려놓음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시련이 곧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저처럼 힘든 시간을 겪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간절하다면 끝은 꼭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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