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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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2-05-02 09:25 조회1,606회 댓글0건본문
죽음을 향한 동경
어려서부터 우울했다. 아마도 알코올 중독이신 아버지로 인한 영향이 컸을 것이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저녁이면, ‘제발 오늘은 무사히’를 기도하며 매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중학교 시절, 연습장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40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살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것은 고행이며, 그 고행은 ‘죽어야 끝이 난다’고 결론지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을 향한 동경’을 키워왔다.
술에 빠져 살 때는 그것이 더욱 깊어졌다. 매일 새벽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고 있음에 절망했다. 어쩔 수 없이 술을 넣어줘야 움직일 수 있었고 아이들 밥을 차릴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또한 시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몰래 사다가 몰래 마시고 몰래 치워야 했다. 매일이 짙은 회색빛이었고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어느 날, 소주 4병을 사와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냥 마시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3병 반을 마시고 쓰러졌고 난 멀쩡하게 일어났다. 남아 있는 소주 반병을 마시며 아파트 옥상을 올라가려 했으나, 문이 쇠사슬로 잠겨 있었다. 죽고 싶었으나 죽을 방법을 몰랐다. 아니, 정말 사실은 죽는 것이 무서웠던 것 같다.
알코올 병원에 입원하고 아버지의 49제를 참석하지 못한 날, 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딸로 똑같은 술을 먹고 창살에 갇혀 나가지 못하는 나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밑바닥이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병원 옥상에 올라가 어떤 방법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목을 맬 수 있는 긴 줄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나의 살점과 같았던 어린 아이들이 불쌍해서 죽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짜 사실은 그렇게 초라하게 죽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알코올 병원에서 나온 후, 단주를 시작했다. 메시지를 전달하러 오신 멤버님들을 보고 모임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했다. 고비도 있었고 역경도 있었으나, 곁으로 보기에는 평탄한 5년을 단주하며 살았다. 하지만 항상 발목을 묶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힘든 상황이 몰려오면 번뜩 스치고 가는 ‘죽음을 향한 동경’이었다. 술 마실 때보다 백배는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사는 것은 고행이었다. 죽음으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가슴 깊숙이 자리한 차갑고 불순한 덩어리였고,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 걸림돌이었다.
단주 5년칩을 받고 이틀이 지난 후, 암 진단을 받았다. 무척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으며 화와 함께 짜증이 밀려 왔다. ‘왜 하필 나인가!’라는 원망과 ‘역시 나는 불행한 존재’라는 자기연민도 올라 왔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가지 감정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죽음을 향한 동경’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 병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적 상황이 ‘죽음’을 지우고 ‘삶’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었다. 돌아보니 술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도 그랬다. 다시 살기 위해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단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술을 두고 죽음과 삶을 선택해야 했던 그때처럼, 암을 지닌 몸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죽음’ 보다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사투를 결심했다.
앞으로 12회에 걸친 항암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다행이다. 술을 마시고 있었다면 나는 치료를 받을 시도도 못해 봤을 것이다. 술을 안 마실 수 있는 지금, 이 병을 만난 것이 신의 뜻이라면, 받아들인다. 그리고 깨닫는다.
‘죽음을 향한 동경’ 은 사실, ‘삶을 향한 동경’이었다.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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