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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의존 회복자님의 단주 수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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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작관리자 작성일22-09-06 14:22 조회5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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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 버린 양말 한짝

술을 중단하고 여러 날 동아 온갖 두려움에 시달리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시작한 어느 아침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도 '이렇게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조금씩 마시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유혹을 느끼며 갈팡질팡하지 않았을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의 준비물을 챙기는 동안, 머리를 빗겨주면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면서 내내 끊임없이 먹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남 그러기에는 금단으로 하얗게 지샌 밤과 갈망으로 꾹꾹 참아온 낮의 며칠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머리가 둘로 나뉘어 한쪽에서는 '먹어라!', 다른 한쪽에서는 '먹지 말아라!'를 두고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달래고 빨래를 시작했다. 속옷과 양말을 빨고 겉옷을 세탁기에 돌린 후, 잠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세탁이 다 되었다는 멜로디가 들리고, 기계처럼 움직여 세탁기 안의 세탁물을 꺼냈다. 탁탁 털어 하나씩 옷걸이에 걸어 널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가지런히 널었다. 그런데 양말 한 짝을 찾기 시작했다. 세탁기 안을 살피고, 세탁실 구석구석을 들춰보고, 거실과 베란다를 다시 오갔다. 하지만 양말 한 짝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계속 양말 한 짝을  찾아 헤맸고, 나중에는 빨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방과 욕실을 가보았으며, 심지어 옷장과 서랍을 다 열어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양말 한 짝을 찾아다녔지만 끝내 그것은 나오지 않았다. 며칠째 잠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한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나는 그만 쓰러지듯 눕고 말았다. 천정을 바라보고 거친 숨을 쉬면서, 아직도 '양말 한 짝은 도대체 어디에 있윽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강박이었다 무서운 집착이었다. 하나를 놓치면 절대 안 되는, 원래 쌓인 것은 하나가 없으면 말이 안 되는,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반듯하게 놓여 있어야 하며, 네 귀퉁이가 맞아떨어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감정. 나는 한동안 그것들을 해결하지 못해 마치 작은 상자 안에서 몸을 젖히지도, 돌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것이 중독자의 특성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알코올 병원에 있을 때였다. 알코올 중독자의 뇌는 술로 인해 변형이 일어나고,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무엇이든 완벽해야 하는 강박과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나의 성격적 결함. 또한, 변형된 뇌로 인한 부정적 감정이 들어오는 것은 분명 단주를 위해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였다.

단주를 하면서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반복했다. 세상에는 어쩔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 또 그 안에 내가 할 수 없는 일 역시 무수히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때로는 완벽하지 않은 채로 있음이 정상이고, 잃어버린 한쪽은 잊고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집에 있는 물건들이 때로는 제자리에 있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음고 가끔은 삐뚤게 있어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도 차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빡빡한 것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로운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었고, 지금은 자유롭고 넉넉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나으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았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이는 '나'라는 존재를 꾸미지 않고 '바로보는' 연습일 수도 있었다.

요즘도 빨래를 널면서 양말 한 짝이 빌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양말 한 짝을 찾아 헤매던 그때를 떠올리며 웃는다.

'언젠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겠지! 없어져도 괜찮고.'

♣ 단주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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